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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12. 슘페터 호텔과 개츠비 곡선, 그리고 경제민주화
‘창조적 파괴’라는 문구로 유명한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혁신과 경제발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분배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불평등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슘페터는 한 시점에서의 불평등과 사회적 이동성 혹은 계층 이동성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했다. 층수가 높을수록 방이 크고 좋은 고층 호텔이 있다고 하자. 꼭대기 층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굉장히 호사스런 방을 차지하고 있고, 반면 맨 밑바닥 층에는 수많은 이들이 작은 방에 꾸겨서 들어앉아 있다. 이것은 한 시점에서 불평등한 분배를 보여준다. 그런데 매일 한 번씩 손님들이 방을 바꾸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오늘의 부자가 내일의 가난뱅이가 되기도 하고, 거꾸로 오늘의 가난뱅이가 내일의 부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슘페터는 이러한 사회적 이동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 시점에서 불평등이 심하더라도 사회적 이동성이 충분하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과연 슘페터의 비유는 현실에 적용이 될 수 있을까?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환상에 불과한 얘기는 아닐까? 오랫동안 많은 미국인들은 슘페터 호텔이 미국경제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믿었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소득불평등이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처럼 계급이 고착화되지 않고 유동적이어서 사회적 이동성이 높다고 믿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누구나 열심히 노력만 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미시시피 농촌의 가난한 십대 엄마에게서 태어나 밀워키의 슬럼가에서 자라며 아홉 살 때 강간을 당하고 임신까지 했던 가엾은 소녀가 굳은 결의로 꿈을 좇아 노력한 결과 미국 최고의 토크 쇼 호스트가 되고 배우, 저술가, 프로듀서, 자선살업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거대한 미디어 왕국의 소유자가 되기에 이르렀다는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의 얘기는 한 전형적인 예이다.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개천에서 용이 난’ 스토리가 무수하게 많으며, 이를 곧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국의 높은 사회적 이동성과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믿음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고 신화에 불과했음이 최근 밝혀졌다. 2012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이던 앨런 크루거(Alan Krueger)는 그의 연설과 의회에 보내는 [대통령의 경제보고서]에서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소개하였다.1) 아래 그림에 나온 대로 국제비교를 해보면 소득불평등과 세대간 계층고착성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계층상승의 심볼로 여겨지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세대간 계층고착성은 세대간 소득탄력성, 즉 부모세대의 소득이 자식세대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으로 측정한다. 이 영향이 작을수록 계층이동성이 크고, 이 영향이 클수록 계층고착성이 큰 것이다. 개츠비 곡선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소득불평등이 낮은 나라들에서 계층이동성이 크고 (즉, 계층고착성이 낮고), 선진국들 중 불평등이 심한 미국은 계층이동성이 낮으며, 브라질, 칠레, 페루처럼 불평등이 매우 심한 개도국에서 계층이동성은 매우 낮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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